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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의료생협 생애주기별 건강아카데미 '나를 보듬다' 1강,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조한진희(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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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의료생협 생애주기별 건강아카데미 '나를 보듬다' 1강,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조한진희(반다)

momoDam 2017. 11. 22. 09:02

우리 마을 의료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여성의 몸건강, 마음건강 챙기기 강의를 5회 듣게 되었다. 강의가 참 좋아서 정리도 할 겸 강의록을 적는다. 강의를 받아 적기는 했지만 강의록으로 다시 적으려니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내 이해에 기반하여 재구성하여 적을 수밖에 없다.

 

[1,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조한진희(반다)]

 

강사로 오신 반다는 페미니즘 저널 일다반다의 질병 관통기를 연재하신다고 했다. 나는 페미니즘을 아직 잘 모르는데, 반다는 페미니즘에서의 나의 위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운을 뗐다.

 

페미니즘에서는, 모든 이에게는 각자의 자리, 입장, 관점에 의한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나의 위치를 절대화, 보편화하지 않고 내가 지금 현재 이 말을 하는 순간 어느 위치에 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반다는 이것을 좌표라고 했다. 내 좌표를 밝히고 그 좌표 상에서 이야기하는 것.

 

반다 본인의 좌표는 질병을 겪은 뒤 그로부터 재설정된 것 같았다. 많이 아팠고, 그로 인해 지금도 하루 4시간 이상 노동이 어렵다고 하셨다. 아픈 몸과 함께 했던 경험을 많이 나눠주셨는데 그 중 두 가지를 꼽자면, 1) 내가 나에게 하는 말과 2) 사회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들 수 있겠다.

1) 내가 나에게: 나는 무능력하다 부정적 자아감

2) 사회가 나에게: 그렇게 (자기 관리를 안했, 일 중독이었, 성격이 예민하...etc) 으니 아프지.

2)를 듣고 우리는 그랬나...’하고 생각하고 결국 1)의 부정적 자아감으로 다시 귀결된다. 사회적 고립은 당연히 따라온다.

 

[아래의 반다의 강의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신은 문제라고, 장애라고, 건강하지 않다고, 누가 정의했나요.]

 

질병을 보는 눈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반다는 장애를 보는 눈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자고 했다. 거기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며.

 

Case1. 스웨덴에서는 스웨덴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주민일시적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사회적으로 지원한다.

Case2. 마서즈 비니어드 섬 이야기

: 어떤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 이 섬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화가 보편어이다. 듣거나/듣지 못하는 능력은 장애가 아니라 특성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농인이고, 수어를 쓸 뿐인데 (특성) 어떤 사람들이 수어를 잘 모를 뿐이다.’라고 한단다.

 

장애에 대한 기준이 사회마다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어떤 특성을 장애라고 이름 붙이고 (정상)사회의 일부로 있게 하지 못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관점을 건강하다는 개념으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Case1. (어떤 사람이 몸이 약해서) 하루에 4시간 이상 노동하기 힘들다.

-한국 사회: 8시간 노동하고 야근도 자주 발생하는 환경이며, 회식 후에도 다음날 끄떡없이 멀쩡히 출근해야 사회생활 잘하는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스웨덴 사회: 계속적으로 하루 노동시간을 줄일 것을 지향하며, 16시간 노동시간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는 완전한 부격적자겠지만, 스웨덴 사회에서는 대체로 근근이 노동시간을 채우며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건강하다는 기준이 사회적으로 다를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건강함의 기준이 높으면 누가 좋은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좋은가? 사회가 좋은가? 의료가 서비스로 판매되는 지금, 자본가와 의료자본에게는 어떤가? 내가 영양제를 사먹고,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드는 것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건강한 삶은 중요하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나 노화가 찾아오듯이, 질병도 찾아온다. ‘건강한 사람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순간, 나는 지금 이 사회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그럼, 영양제를 사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몸을 만들면 건강을 지킬 수 있나? 에 대해서도 반다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건강은 개인이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영역인가? 사회의 조건, 문화, 구조에서 자유로운 개인이 있을 수 있는가? (대부분의 우리는 아니다.) 앞서 말한 한국사회의 환경에서 개인이 어디까지 건강을 지킬 수 있는가?

내가 종종 하던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내가 지금 먹는 것(직접 몸속에 넣고 있는 것)은 어떤가? 나는 사회 안에서 무엇을 먹고 있는가? 어린아이들이 성격이 급하거나 생떼를 부리는 것, 피부병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 왜 많은 엄마들은 자신들의 탓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정말 엄마 개인의 문제인가?

왜 우리는 건강하지 않게 되면 니 탓이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그 말은 어디까지 타당한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No라고 말한다. ‘노력하면 건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여기에 오버랩 된다.

 

반다는 1) 질병을 정의하고 2) 그 발생맥락을 규정하고 3) 치료과정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의료가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넘어간 이 시대에 3)에서 말하는 치료과정이 돈 있고 힘 있는 다수의 수요자들 위주로 편성되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럽다. 파킨슨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이유는 그 병이 백인 남자들에게 특히 많이 발병하기 때문이라는 것, 여성의 월경에 대한 연구가 대단히 미진한 것 등이 이를 말해준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질병 경험자는 상처받은 스토리텔러다. 간병행위는 질병을 경험하는 새로운 위치이며, 또 다른 스토리텔러다.

 

우리는 이제 질병의 개인화에 반대해야 한다. 거기에서 사회적 구조를 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질병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의료 중심이 아닌,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크다. 여성의 경우에는 성()적인 낙인까지 덧붙여지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을 위해서라도 질병 경험은 이야기되어야 한다. 모든 경험은 해석을 필요로 한다. 힘들고 아픈 경험이라면 더욱 더. 그렇지 않을 때, 그 경험은 몸에서 우울과 분노가 되어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더욱 많은 이들과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하자. 내 경험을 내 경험으로만 두지 말고 나누자. 질병의 사회화(사회화: 사적(私的)인 존재나 소유를 공적(公的)인 존재나 소유로 바꾸어 감. 또는 그런 일)가 필요하다.

 

[읽어볼 것]

-: 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 앨랜 커넬스

-반다의 질병 관통기, 페미니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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